LERI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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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miosis

옷은 형태를 얻는 순간부터 낡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은 망가지거나 부서지는 것과 다르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모습과 분위기로 낡아갈 것인가에 있다. 순리대로 있는 것들은 마음이 편하다. 억지스럽지 않으며 어떤 의도나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모든 옷은 표현을 한다. 그러나 옷은 옷으로서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은 상태로 완성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두드러지는 부분 없이 모든 곳의 힘이 같아야 한다. 바느질은 원단 조직과 하나 되어 보이지 않아야 하고, 깃은 자기 무게대로 가라 앉아야 한다. 어디에서 온 것인지 짐작할 수 없는 상태가 본질적이고 무심한 상태다. 비어 있음으로 나의 색과 맞출 수 있는 상태, 생명력을 나눠 가질 준비가 된 상태, 그리고 함께 낡아갈 수 있는 상태.